하나의 유령이 대한민국을 배회하고 있다. 반지성주의라는 유령이. 그것은 현실주의의 가면을 쓰고 우리 곁을 떠돌며 사고를 마비시킨다. 나는 이 글을 통해 유령 탐지기를 제공하여 사람들의 퇴마 의식을 돕고자 한다. 유령에 홀린 사람들은 놀랍도록 비슷한 증상을 보인다. 다음과 같은 말을 들어본 적 있는가?
“어차피 변하지 않는 일에 대해 생각하지 마”
“너가 통제할 수 없는 일에 대해 고민하지 마”
“책 읽어도 인생 안 변한다. 나가서 행동해라”
“그냥 해라”
“나만 아니면 돼”
짧고 단순하며 직관적으로 힘이 있는 이 말들은 순간 반박하기 힘든 언어의 비대칭성을 무기로 사람들을 홀린다. 하지만 당신이 예민한 인문학적 감성을 갖춘 이라면 이 말들이 함부로 복잡한 감정의 층위를 단순화하고, 현실에 굴복하고 무력함을 수용하라고 명령하는 것에 직감적으로 불쾌감을 느꼈을 것이다.
반지성주의라는 유령에 홀린 사람들이 쉽게 빠져나올 수 없는 이유는 그것이 마음의 평화를 주기 때문이리라. 생각하지 않고 책임지지 않는 것은 누구에게나 편한 법이다. 사고를 중단하려면 이미 주어진 구조에 순응하면 되고, 책임을 회피하려면 나서서 새로운 행동을 하지 않고 구조를 유지하면 된다. 그렇게 입에서 흘러나오는 말. “생각하지 말고 그냥 해라” “나만 아니면 돼” 그렇게 말하며 다음과 같이 스스로를 정당화한다. ‘어차피 해결할 수 없는 일이라면,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일이라면 생각하는 것은 낭비가 아닐까…?’
회피는 처음이 어려운 법. 그렇게 판단과 숙고의 과정을 무력화해버리고 복잡한 고민을 비효율 취급하다 보면 어느새 체제가 원하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 언제부턴가 체제에 순응하지 않는 이들이 거슬리기 시작한다. 그들에게 진심 어린 조언을 건네본다. “책 읽어도 인생 안 변해. 나가서 행동을 해야지” “책만 많이 읽는 애들이 세상 일은 모르더라. 머리만 굴리지 말고 몸을 움직여” “현실은 책에 있는 것처럼 돌아가지 않아. 너무 생각만 하지 말고 부딪혀 봐” 이제 당신도 영화 ‘매트릭스’의 스미스 요원이다.
현실주의의 가면은 유령의 또 하나의 강력한 무기이다. 생각하는 것은 힘들고, 진실은 때론 고통스럽다. 어차피 결과가 바뀌는 것도 아닌데 고통스럽게 진실을 마주하기 위해 생각을 해서 무엇하랴. 이때 유령이 내미는 현실주의의 가면은 참으로 달콤하다. 자신이 현실을 깨닫고 성숙한 어른이 된 느낌마저 선사한다. “세상을 이해하려고 하지 마. 그냥 적응해. 그게 어른이 되는 거야” 그렇게 기존의 질서를 의심하고, 불편한 진실을 마주하며, 구조를 이해하려던 노력은 젊은 시절의 패기로 치부되고 현실이라는 미명 아래 자신이 이루지 못했던 젊은 시절의 이상, 바꾸고 싶었지만 바꾸지 못한 현실은 정당화된다. 그러곤 젊은 시절의 자신과 닮은 청년을 보며 버럭 소리친다. “너도 내 나이 돼봐!”
가장 탁월한 이상주의자만이 현실주의자다. 철학자 강신주의 말이다. 뚜렷한 이상을 마음에 품은 사람은 곧 깨닫게 된다. 눈 앞의 현실이 모두 내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극복해야 할 현실임을. 그렇게 이상을 마음에 품은 채, 현실을 하나 하나 마주하며 나아가는 고통스러운 길을 자발적으로 택한다. 이상을 이뤘을 때에만 의미가 있다고 착각하지 말자. 같은 고통스러운 현실을 겪으면서도 웃을 수 있는 것은 마음에 품은 이상 덕분이니까.
사실 지금 당장 현실에서 바꿀 수 있는 것, 내가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그 시작점은 바로 내 생각을 바꾸는 것이다. 생각이 바뀌지 않으면 행동이 변하지 않고, 행동이 변하지 않으면 현실은 절대 변하지 않는다. 진정한 변화는 행동에 깔려있는 사유의 변화에서 출발한다. 생각을 멈추게 하려는 체제의 달콤한 말에 저항하자. 당장 나와 관련이 없더라도,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일이더라도 결국 어떤 식으로든 나와 연관이 있기 때문에 내 눈에 들어온 것이다. 완벽히 알 수 없어도 더 나은 이해를 만들어가기 위해, 완전히 통제할 수 없어도 부분적으로 다룰 수 있는 지점을 찾기 위해 회피하지 않고 직면할 수 있다. 조금 고통스러우면 어떠한가? 입에서 욕이 나오고 짜증을 내면서도 굴복하지 않고 계속해서 나아가다 보면 언젠가는 길고 어두웠던 터널의 끝에서 작은 불빛이 보이기 시작할 것이다. 반지성주의는 ‘주의자’가 없는 ‘주의’라는 점에서 유령과 같다. 유령에 홀리지 않고 인간으로서 삶을 직면하는 당신을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