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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inion

차라리 역사를 배우지 말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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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미처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우리의 생각을 주조하면서 누구를 존경해야 하고 누구를 경멸해야 할지 […] 등의 문제에 관해 우리의 견해를 형성하는 사람은 누구일까?
— Edward Bernays, Propaganda

학창 시절 교육과정으로 문학과 역사 교육을 참 중요하게도 배운다. 나름대로 열심히도 배우고 점수도 잘 받았다. 그러나 현재 나는 어린 학생들에게 문학과 역사를 가르치는 것에 반대한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사람들이 별소리를 다할 것이라는 걸 잘 안다. 그러나 아직 자신의 철학과 가치관이 제대로 자리 잡지 않은 시기에 이런 교육은 해가 된다고 나는 믿는다. 이 시기에 사람들은 올바른 역사 지식이나 훌륭한 문학에 대한 독해력을 학습하는 게 아니라 감정학습한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성인이 되어 잘못 배운 지식을 누군가 바로잡아 주려고 하면 진리에 대한 수정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정체성’에 대한 공격으로 받아들인다.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과는 대화가 불가능해지고 어느새 역사는 토론과 탐구의 대상이 아니라 나와 같은 서사를 지지하는지 확인하는 정치의 대상이 된다.

아, 프로파간다! 미국인의 연간 베이컨 소비량은 약 18파운드(약 8kg)이며 이 중 70%가 아침 식사로 소비된다고 한다. 이 베이컨 소비는 사실 에드워드 버네이스의 PR 캠페인으로 만들어진 것이라는 건 아주 잘 알려진 사실이다. 몸에 좋지 않아도, PR의 결과물로 생긴 것일 뿐이라는 진실을 까발려도, 아직까지도 미국 아침을 상징하는 아이콘처럼 받아들여질 만큼 프로파간다의 영향력은 무서운 것이다. 역사 또한 어려서부터 의도된 사상을 담아 특정한 방향으로 한번 주입되면 파블로프의 개처럼, 감정의 트리거를 원할 때 당길 수 있는 편리한 조건을 형성한다. 대한민국만의 잘못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모든 국가는 체제 정당화를 위해 이런 메커니즘을 다 사용하고 있으니까.

언제부턴가 매년 8월 15일이 되면 논란이 불거진다. 일제로부터의 독립, 그리고 미군정 3년을 거쳐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이 민주공화국으로 건국되어 지금까지 자유를 누리며 눈부신 발전을 이루었는데 자꾸만 다른 말이 달라붙는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지 알기 위해 잠시 발터 벤야민의 다음 문장을 보자.

To articulate the past historically does not mean to recognize it ‘the way it really was’ (Ranke). It means to seize hold of a memory as it flashes up at a moment of danger.
— Walter Benjamin, On the Concept of History, Thesis VI —

발터 벤야민의 역사관은 대단히 중요한 시사점을 남긴다. 그는 역사를 ‘구성’의 대상으로 보았다. 과거의 서사를 점령하고 (seize hold of) 그것을 현재의 관점에서 다시 구성하여 의미를 적극적으로 창조해내는 것. 이것이 그가 가진 역사관이었다. 과거에 있었던 일을 있는 그대로 잘 배우고 외우기만 하면 된다는 순진한 생각은 이제 버리자. 하긴, 당장 매일의 뉴스도 있는 그대로의 사실이 아닌데 역사가 그럴 리가 없지 않은가. 기억하자. 우리는 여전히, 과거의 서사를 점령하는 전쟁 중에 있다.

사건의 나열. 그 속에서 논쟁에 휘말린 일반적인 사람들은 혼란스럽기 마련이다. 복잡하고도 격렬한 논쟁을 보다가 지쳐 그냥 일반적으로, 공식적으로 인정하는게 어떤 쪽이지하고 편을 골랐다면 당신은 NPC다. 문제의 본질은 결국 정치다. 무비판적으로 주어진 집단 서사를 받아들이고 누구를 경멸해야 할지 정해준 대상을 향해 분노하는 착실한 용병이 되는 것, 그것이 그들이 당신에게 가장 원하는 것이다. 일본으로부터의 독립을 기뻐하며 친일파를 향해 분노하는 당신에게 묻는다. 당신의 정신은 독립했는가? 분노에 눈이 멀어 자신의 마음을 애국심이라 착각하며 일본이 아닌 또 다른 누군가에게 정신을, 당신의 소중한 자유를 식민 지배당하고 있지는 않은가?

해석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무엇이 빠졌는지 끝없이 질문하자. 스스로 생각하고 분석하는, 우리의 손으로 직접 과거의 서사를 점령하는 자유로운 개인이 되자. 일본으로부터 독립하고도 또다시 누군가가 나의 자유로운 생각을 지배하게 두지 말자! 이 정신을 일깨우는 것이 진정 광복절, 그리고 건국절을 제대로 기념하는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