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경보기가 울린다. “왜애애앵—!” “어, 뭐야? 나가야 하는 건가?” 불안해하는 친구의 말에 지겹다는 듯 다른 친구가 답한다. “야, 저거 맨날 저래. 오작동하는 거면 고치던가..” 모두가 자신의 경험을 떠올리며 진짜 위험한 상황에 비상경보기가 울린 적이 없음을 이야기한다. “누가 장난으로 누른 거 아니야? 이런 장난 좀 치지 말았으면 좋겠어” “자꾸 이러면 진짜 위험할 때 더 큰일 날 텐데…” 1
진정한 작가의 내면의 비상경보기2, 그것이 이렇게 망가져 버릴 줄 누가 알았겠는가. 오작동뿐 아니라 너무 많은 사람이 시도 때도 없이 울려댄 탓에 이젠 위기를 감지했을 때 비상경보기가 울리는 것이 아니라, 비상경보기를 울릴 권한을 지닌 자가 문제가 있는 것인지를 결정할 권한까지 손에 쥐게 된 상황이 펼쳐져 버린 것이다. 그렇게 젊은 시절 비상경보기를 울리며 위기가 왔음을 목놓아 소리치던 청년이 이 정도는 경보를 울릴 일이 아니라며 청년을 꾸짖는 ‘지식인’이 되었으니, 이보다 비극적인 일이 또 있을까. 무엇이 이들을 자신이 가장 되고 싶지 않던 모습으로 만들었는가!
법륜 스님의 즉문즉설에서 들었던 이야기 같다. 한 아들이 알코올중독자인 아버지를 누구보다 혐오하며 자랐는데, 훗날 그 아들 역시 술에 의존하는 삶을 살게 된 이야기. 카르마라고 했던가. 사실 이런 비슷한 이야기는 꽤 흔하다. 폭력적인 아버지 아래에서 자란 어렸을 때 맞는 것이 싫었던 아들이 아버지가 되어 자식을 때리는 식이다. “널 위해서 이러는 거야!” 이런 끔찍한 대사를 결국 내뱉게 되었을 때, 그들은 과연 자신의 어릴 적을 기억할까? 카르마라고 부르던 뭐라고 부르던 상관없다. 미국의 유명한 강연가 사이먼 시넥에 따르면 인간의 뇌는 부정형 명령을 효과적으로 처리할 수 없다고 한다. 3 아들이 했어야 하는 생각은 ‘알코올중독자인 아버지처럼 살고 싶지 않아!’가 아니다. 부정형 명제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긍정형으로 바꿨어야 하는 것이다. ‘어떻게 해야 나는 올바르게 삶을 살아가고 좋은 아버지가 될 수 있을까?‘가 맞는 질문이다. 삼국지연의에서도 유비가 장비에게 술 마시지 말고, 성질부리지 말고, 병사들을 때리지 말라고 당부하였는데 장비는 결국 세 가지를 한번에 어기지 않았던가?
탄광 속 카나리아 (canary in the coal mine) 라는 표현이 있다. 위험의 전조증상을 의미하는 비유로 과거 광부들이 갱내 유독 가스를 감지하기 위해 카나리아를 새장 안에 넣어 광산에 함께 들어간 것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4 결국 비상경보기와 같은 것 아닌가 생각하고 있다면 유독 가스를 맡았을 때 카나리아는 죽지 않을 수 없고, 광부는 본인이 살기 위해서는 카나리아에 집중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것을 기억하자. 이 작은 구조의 차이를 무시한 결과가 바로 현재 소위 ‘지식인’들에게 마음대로 비상경보기를 울리기도, 멈추기도 할 권한을 넘겨주게 된 것이니까.
우리 사회 곳곳에서도 많은 이들이 카나리아가 되어 위험의 전조증상을 알렸다. 임대인은 이런 식으로 부동산 정책을 펴면 안 된다고 말해왔고 기업인은 기업 운영의 어려움을 말해왔다. 2030 세대 남성들 또한 법적, 정책적 문제점에 대해 말해왔다. 그러나 이 사회의 지식인과 기득권층은 ‘문제가 있는 것인지 결정할 권한’을 마음껏 사용하며 본인들이 결정한 아젠다에만 비상경보기를 울려댔다. 그렇게 다주택자 임대인을 무시한 채 부동산 정책을 편 결과 전월세가 폭등했고, 기업인을 무시하고 노동자만 강조한 결과 기업인들이 꾸준히 경고했듯 기업과 인재가 나라를 떠나고 있으며, 2030 남성을 비난하는 쉽고 비겁한 선택을 하는 동안 대한민국의 출산율은 돌이킬 수 없는 수준에 이르러 이제는 전 세계의 연구 대상이 되었다.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을 극우라고 욕하며 나라를 이끌어가는 자리에 앉아 있는 이들은 이제 ‘지식인’이 아닌 오작동하는 비상경보기다.
슬로베니아의 철학자 슬라보예 지젝은 오늘날 좌파가 실패하고 있는 지점을 지적하며 “브이 포 벤데타 (V For Vendetta) 2부를 볼 수 있다면 어머니라도 팔겠소. 혁명의 다음 날은 어떻게 되는가?” 라고 물은 적이 있다. 5 아무리 사람들의 감정을 자극하고 심지어는 올바른 비판을 내놓을지라도 결국 안티테제만으로는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내지 못한다. 비판은 쉽고, 사소한 것일지라도 대안을 내놓고 현실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어려운 법이다. 그렇게 혁명이 끝나고 역할을 찾지 못한 지식인들이 또다시 혁명을 일으키기 위해 착실히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억지로 적으로 설정하는 모습은 추하기까지 하다.
전 보건복지부 장관 유시민의 항소이유서, 그 글의 유명한 마무리인 네크라소프의 시구를 비틀며 이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다른 이보다 더 슬픔과 노여움을 느끼는 것처럼 보인다고 해서 조국을 더 사랑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Footnot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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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신주, 비상경보기: 절실하게, 진지하게, 통쾌하게 (파주: 동녘, 2016), 16.
비슷한 내용이 다음에도 있으니 참고하라:
강신주, “‘비상경보기’를 잠시 끄며” 경향신문, 오피니언, 2014년 6월 1일, 열람 2025년 8월 31일, https://www.khan.co.kr/article/201406012030285. ↩ -
발터 벤야민, 일방통행로: 사유의 유격전을 위한 현대의 교본, 조형준 옮김 (서울: 새물결, 2007), 15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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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mon Sinek, “How to Stop Holding Yourself Back | Simon Sinek”, YouTube video, May 5, 2021, https://www.youtube.com/watch?v=W05FYkqv7h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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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rbara Freese, Coal: A Human History (New York: Basic Books, 2003), 4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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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lavoj Žižek, “RFE/RL interview with Slavoj Žižek”, YouTube video, November 27, 2017, 3:28-4:33, https://www.youtube.com/watch?v=Iag—2S7084&t=208s. ↩